현대 사회에서 주거 문제는 단순히 부동산 시장이나 경제적 이슈로만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치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집’은 시민의 기본권,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정치적 사안입니다. 특히 현대 도시화와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주거권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확보가 아닌, 시민의 정치적 존엄성과 참여 권리까지 아우르는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 주거권은 왜 정치적인가?
주거권은 국제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제25조에서도 명시된 바와 같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그러나 이 권리는 시장 논리 속에서 종종 침해받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임대료 상승, 재개발로 인한 퇴거, 홈리스 증가 등은 특정 계층의 정치 참여 기회를 박탈하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위협하게 됩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시민의 삶을 조정하고 규율하는 장치이며, 주거라는 삶의 기반이 위협받을 때 정치 역시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소유하거나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선거에 참여하고, 의견을 표현하며, 공동체 일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여유와 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 정치적 주체성의 공간: '살 곳'이 있어야 '목소리'도 있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로만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정치적 주체’로 존재할 수 있는 조건과 기반이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제도입니다. 집이 불안정한 이들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안정된 사회 참여가 어려워집니다. ‘유주택자 중심 정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책 결정은 때로는 무주택자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진행되기도 합니다.
특히 청년 세대나 취약 계층은 주거 불안을 통해 정치적 소외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들이 미래의 민주주의를 떠받칠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이들을 정책 테두리 밖으로 내모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글로벌 도시화와 민주적 퇴행
도시화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메가시티 안에서는 토지의 희소성과 자본 중심의 개발 논리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거주민들의 이주는 물론, ‘도시 속 난민’처럼 생활 기반을 잃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은 민주주의의 퇴행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도시의 재개발로 인해 원래 거주하던 이들이 밀려나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현상은 단지 경제적 재편만이 아니라, 정치적 소외와 배제를 동반합니다. 지역 커뮤니티의 해체는 곧 정치적 연대의 약화로 이어지고, 이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쇠퇴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 주거권을 중심에 둔 정치, 가능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거권을 민주주의의 중심에 둘 수 있을까요? 단순한 주택 공급 정책 이상의 ‘정치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다음과 같은 방향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 주거권을 헌법적 권리로 명문화하여, 모든 시민이 국가에 안정적인 거주 환경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기반 마련
- 공공임대주택의 확대뿐 아니라, 공공커뮤니티 공간 조성으로 시민 간 교류 및 정치적 연대 강화
- 청년과 저소득층 대상 주거비 지원 정책을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닌 ‘민주주의 회복’의 관점에서 재설계
- 지역 공동체의 의견을 반영한 개발 정책 수립으로, 참여 기반의 도시 거버넌스 확대
이처럼 주거 문제를 정치의 본질적 과제로 다루는 것은 단순한 사회 정책의 문제를 넘어서,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핵심적인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 결론: '사는 곳'이 곧 '정치적 존재성'입니다
우리는 종종 민주주의를 투표, 표현의 자유, 다원주의 같은 개념 속에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민주주의적 권리의 전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치적 존재’로 설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주거권은 더 이상 주변부의 이슈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민의 목소리와 연결되고, 공동체의 지속성과 맞닿아 있으며,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가늠하는 척도가 됩니다.
‘사는 곳이 있어야, 살맛나는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말은 단지 은유가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가 직면한 실질적인 과제임을 우리 모두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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