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상상력의 힘: 현실을 바꾸는 가능성으로서의 상상

정치적 상상력의 힘: 현실을 바꾸는 가능성으로서의 상상

 

오늘날 우리는 현실 정치에 대한 냉소와 피로, 그리고 반복되는 갈등 속에서 ‘정치란 결국 그런 것’이라는 체념 어린 인식을 흔히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정치란 그렇게 주어진 세계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활동에 불과한 것일까요? 정치학이 말하는 본래의 정치는 단지 권력과 제도의 운영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상상력을 요구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정치적 상상력(political imagination)”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그려보고, 그것을 향한 정치적 실천을 구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정치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요?

정치적 상상력이란 단순히 공상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제도나 질서를 넘어서 ‘다른 방식의 사회’ 또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는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Charles Wright Mills)가 언급한 사회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과 맥을 같이 하며, 우리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치·경제·문화의 전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대안적인 삶의 형태를 고안하는 활동입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 제도나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생태사회 전환 모델, 플랫폼 노동자 권리를 중심에 둔 노동법 개정 같은 논의는 모두 정치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은 단순한 꿈이 아닌, 현실을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시도의 출발점입니다.

---

정치적 상상력의 역사적 사례

역사적으로 정치적 상상력은 수많은 전환점을 만들어냈습니다. 중세의 신정국가 체제에서 근대 국민국가로의 전환, 절대왕정에서 민주공화국으로의 이행, 식민지 체제에서 독립국가로의 탈피 등은 모두 ‘당대에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을 누군가가 상상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20세기 중후반에는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연설처럼, 정치적 상상력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행동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정치적 상상력은 사회운동, 제도 개혁, 정책 구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어 왔습니다.

---

오늘날 왜 정치적 상상력이 중요한가요?

현재 우리는 AI 기술 발전, 기후 위기, 불평등 심화, 인구 구조 변화 등 기존의 정치 구조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복합 위기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존 시스템의 미봉책이 아닌, 더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적 상상력은 그 역할을 발휘합니다. 기후 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존권과 정의의 문제로 확장해 바라보는 시각, 노동을 인간의 존엄성과 연결 지어 바라보는 시각, 국경을 넘어선 연대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구상하는 시각 등이 모두 정치적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

정치적 상상력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1. 비판적으로 질문하기
   왜 우리는 지금의 제도가 당연하다고 여기는가? 지금의 제도 말고 어떤 다른 방식이 가능할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상상의 첫 걸음입니다.
2. 다른 공동체를 관찰하고 배우기
   다른 나라나 지역, 소수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대안적 실험들—예컨대 협동조합, 시민 참여 예산, 커먼즈 운동 등—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3. 예술과 문화에 귀 기울이기
   예술은 정치적 상상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영화, 문학, 연극, 음악 속에는 제도와 규범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힘이 담겨 있습니다.
4. 시민 토론과 집단지성 활용
   정치적 상상은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의 시민들이 모여 자유롭게 논의하는 과정에서 집단적 상상이 형성되고,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상상이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요?

정치적 상상력은 단순한 몽상이 아니라 현실을 변형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정치적 자산입니다. 지금 당장 체제를 전복하거나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존 현실에 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틈에서 변화는 시작됩니다.

 

정치는 언제나 현재의 ‘현실’과 미래의 ‘가능성’ 사이를 오가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풍부하게 상상하느냐에 따라, 정치의 지평은 한없이 확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질문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이 현실은 정말 최선입니까?”
그 질문에서 시작된 상상이,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