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돌봄(Care Politics) 이라는 용어가 전통적인 정치 이론이나 실천과 다르게, 개인과 사회, 국가 사이의 관계를 ‘돌봄(care)’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의 권력, 경제, 법 제도 중심의 정치 담론을 넘어, 인간의 취약성, 상호 의존성, 그리고 공동체적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의 미래에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본 포스트에서는 정치학 분야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흐름, 바로 ‘정치적 돌봄(Care Politics)’ 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정치적 돌봄(Care Politics)이란 무엇인가?
정치적 돌봄이란 단순히 복지 정책을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점을 정치 구조 전반에 적극 반영하자는 주장을 의미합니다. 전통적 정치 이론이 주로 ‘자율적 개인’과 ‘자유’를 강조해왔다면, 돌봄의 정치는 인간을 ‘관계적 존재’로 보고, 돌봄을 사회의 중심 가치로 삼자는 것입니다.
조앤 트론토(Joan Tronto) 같은 정치이론가는 돌봄을 ‘필수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인간 활동’이라고 정의하면서, 돌봄을 정치적 의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릴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녀는 민주주의가 단지 투표와 절차적 참여를 넘어, 일상적인 돌봄 실천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시민적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 지금, 돌봄의 정치인가?
최근 들어 돌봄의 정치가 강조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후위기, 고령화 사회, 경제 불평등 심화 등 다양한 글로벌 위기는 기존의 국가 중심적, 시장 중심적 정치가 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팬데믹은 특히 돌봄 노동자들의 필수성을 부각시켰고, 이들의 노동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평가절하되어 왔는지를 드러냈습니다.
이런 현실은 정치가 생명, 건강, 관계, 일상적 복지와 같은 주제를 보다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압박을 강화하였습니다.
민주주의와 돌봄: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가?
돌봄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절차’로서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관계망’ 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전통적 민주주의 이론이 자유, 평등, 권리 보장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면, 돌봄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원리를 강조합니다.
- 상호의존성 인정: 모든 시민은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며, 동시에 돌보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 존재의 기본 조건입니다.
- 책임과 응답성: 시민은 단지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필요에 응답할 책임도 지닙니다.
- 공공 돌봄 제도화: 돌봄은 가족 내 여성에게만 맡겨서는 안 됩니다. 국가와 사회가 공공적 시스템을 통해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 취약성의 정치화: 시민은 ‘완전한 자율적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취약해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 취약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적 태도입니다.
정치적 돌봄은 어떤 구체적 변화를 요구하는가?
정치적 돌봄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 정책 변화를 요구합니다.
- 보육, 간병, 교육, 건강 돌봄 분야의 공공 투자 확대
- 사회적 돌봄 노동의 가치 재평가 및 노동 조건 개선
- 취약계층(노인, 장애인, 아동 등)에 대한 포괄적 사회적 안전망 강화
- 돌봄 노동에 참여하는 이주 노동자의 권리 보장
- 시민 교육 과정에 ‘돌봄 윤리’ 포함
이러한 변화는 단지 복지 수준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가치관, 인간관, 그리고 정치적 상호작용 방식을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적 돌봄의 비판적 시각
물론 정치적 돌봄에도 여러 비판이 존재합니다.
일부 비판자들은 돌봄 정치가 지나치게 윤리적 감성에 의존함으로써, 구체적인 권력 분석이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간과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돌봄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정치 모델이 자칫 여성에게 ‘돌봄 역할’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정치적 돌봄은 ‘누구나’, ‘공적으로’ 돌봄을 수행하고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며, 젠더 정의, 계급 문제와의 연계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돌봄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오늘날 민주주의는 단순한 투표와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실망하고, 공동체적 유대가 약화되며,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 시대에, 민주주의는 "함께 살아가는 삶" 을 새롭게 상상해야 합니다.
정치적 돌봄은 인간의 취약성, 상호의존성, 그리고 관계적 책임을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재설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민주주의가 더욱 깊이 있고, 회복력 있으며, 인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길이 될 것입니다.
결국, 돌봄의 정치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서로를 돌보는 민주주의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진정한 변화는 작은 돌봄의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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